영화 『공기인형』은 인간과 비인간의 사랑이 등장한다.

『공기인형』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공기를 불어 넣는 공기 인형이지만

이를 로봇으로 상정하고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 어떤 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공기인형』 노조미라는 공기인형(로봇)이 생명을 가지게 되어 자신의 시선에서

텅 빈 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생명을 가지게 된 공기인형 ‘노조미’는 외적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인간과 달리 속은 비어있고 손은 차갑다.

동네를 방황하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준이치’라는 청년과 만나고 사랑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가져버렸다.

하지만 노조미의 정체는 성인용 로봇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성욕처리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아침에 노조미의 주인 히데오가 출근을 하면 노조미는 비디오 가게에 출근을 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히데오의 성욕을 처리해준다.

노조미는 준이치와 함께 일을 하고 바다도 보러 다니면서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간다.

그러다가 인간을 닮은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 소설 속 빠지지 않고

반드시 등장하는 자신의 정체를 들키는 순간이 찾아온다.

노조미는 비디어 가게에서 바람이 빠져 비인간을 들키게 된다.

이 장면에서 준이치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들어나지만

그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응급처치와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노조미를 복구시킨다.

인간의 마음을 가진 로봇 노조미와 인간이 아닌 로봇을 사랑하는 준이치의 사랑은

불행히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공기인형』이 로봇과 인간의 사랑을 어떤 식으로 다루려는 지 파악되는 부분이다.

무엇을 해도 좋다는 노조미의 말에 준이치는 노조미의 몸에서 공기를 빼었다가 넣었다가 하는

놀이를 하고 잠에 든다.

그런데 준이치도 자신처럼 로봇이라고 착각한 노조미는 그가 자신에게 했던 놀이를

그에게 똑같이 해주려고 한다.

칼로 그의 배를 그어버리고 숨을 불어 넣어보려 하지만 로봇이 아닌 준이치는 죽어버린다.

더 이상 자신에게 숨결을 불어넣어줄 사람,

사랑의 대상을 잃은 노조미도 결국 쓰레기장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공기인형』이 그려낸 안타까운 사랑의 비극은 외형이 아무리 인간처럼 보여도

인간과 로봇은 결코 동일하지 않으며 나아가 인간과 로봇간의 사랑은 쉽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를

은연중에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과 인간의 사랑과, 로봇과 인간의 사랑이 어떻게 다른가?

“로봇과의 사랑은 인간의 소유욕을 극도로 만족시켜주지만
일방적인 주종관계의 사랑이 가능할 뿐 결코 존재 대 존재로서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라는

주장이 있다.

인간의 몸과 로봇은 구성요소가 다르기에 사랑은 물론 섹스도 불가능 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서지만 로봇은 본질이 실존에 앞서는

다시 말해 목적이 정해진 채로 태어났기 때문에 서로 다른 존재이며 사랑이 불가능 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인간간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 역시 상대에 대한

소유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상대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데이트 폭력이 그 예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수준 혹은 그 이상의 지능을 가지게 되는 상황에서

로봇과의 사랑이 일방적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로봇에게 어장관리를 당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마치 노조미가 자신의 의지로 주인인 히데오에게 벗어나 준이치와 사랑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과 몸과 로봇이 다르다는 주장은 현재 인간이 로봇화 되고 있다고 반문할 수 있다.

과거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라는 종은 동일한 몸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기술의 발달에 의해 우리의 몸이 과거와 다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인간의 몸은 더 이상 뼈와 살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인공 팔, 인공다리, 인공심장이 그러한 예의다.

첨단 보형물들은 인간의 몸에 침투하여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될 것이다.

기계 또한 인간화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로봇과 인간의 몸의 차이는 줄어든다.

<공기인형>은 노조미와 등장인물들의 겉모습은 흡사하며 속이 비어있다는 점을 계속해서 보여주는데

이것은 육체적으로는 조금 다르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유사한 점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인간과 태어날 때부터 텅 빈 채로 마을을 방황하는 로봇,

노조미는 텅 빔 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를 통해 서로 채워주는 사랑이 가능하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간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며 그렇기에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그런데 이는 노조미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자유의지의 획득을 의미한다.

노조미는 자신의 의지로 생명유지수단인 공기펌프를 버리고 사랑의 대상에게 다가간다.

이것은 사랑을 위해 죽음도 피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로봇과 인간이 실존과 본질에 있어 다르다는 것은 『공기인형』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공기인형』은 노조미와 히데오 그리고 준이치를 통해 로봇과 인간사이 사랑의 과정과

비극적인 결말을 다룬다.

이것은 일면 로봇과 인간의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로봇의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며

사실 『공기인형』은 인간과 로봇의 사랑을 긍정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영화는 로봇과 인간의 사랑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의 사랑의 형태에 반성을 불러일으킨다.

『공기인형』은 사랑의 대상이 인간이던 로봇이던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은 히데오처럼 사랑하는 대상을 영원히 잃을 수 있으며

준이치가 죽은 것처럼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러니 상대를 아끼고 존중하는 성숙한 사랑을 통해“사람의 마음 따위 괜히 가지게 되었어.”라며

사랑을 후회하는 일이발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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