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중국 사회에서 가장 큰 변화는 시장이 주도하는 경제체제로의 전환으로

이러한 체제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일반 대중들은 거대한 생산능력과 소비능력을 형성하며

그들의 세속적 욕구와 만족에 관심을 가졌다.

이로써 대중소비문화는 중국 사회를 지배하는 중요한 문화 부호가 되었고

서구 모더니즘의 모방과 답습에서 점차 본토문화의 경험과 융합으로 새롭게 창조되었으며

순식간에 중국인들의 일상으로 진입하였다.

이로써 사회문화적 구조는 더욱 다원화되었고 정부 지지와 대중 매체의 다양화는

소비문화를 효과적으로 확산시켰으며, 대중의 보편적 세속적 욕구를 사로잡아

사회의 주도적 문화가 되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집단생산 체제가 해체되고 정부계획하의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었다.

1980년대 이후의 중국의 시장경제체제는 점차 일정한성과를 얻었고

인터넷과 시장경제는 세계화의 발전을 촉진하였는데

이러한 ‘글로벌환경’ 속에서 중국의 대중소비문화는 이전의 절대적, 강제적 성격의 문화를 대체하여

중국 사회를 주도하는 문화가 되었다.

특히 1992년 덩샤오핑( 鄧 小 平 , 1904-1997)의 남방 순례를 시작으로 1980년대

불확실한 개혁 노선에서 ‘중국식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자본주의적 요소들도 차용해야 한다’는 전면적 경제 개혁의지는

대중소비문화가 만든 복제가능한 성격의 이미지들은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파고들었고

현대인들의 마음 속 이미지들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두 역사를 초월하는 것으로

그것을 전달하는 도구의 발전과 변화 속도는 전통적인 사유방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미지 시대’로의 진입은 사람들의 사유 태도와 시각적 경험뿐 아니라

더 나아가 예술창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대중문화, 소비문화, 매체문화가 당대 예술가들이 발굴해낼 수 있는

새로운 예술 언어로 가장 광범위한 자원을 제공하였다.

즉, 급속한 사회 변화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시각 정보에 영향을 받고

작가들은 이를 작품에 반영한다.

이러한 변화는 미술 언어의 가능성을 확대하였고 대중소비문화는

중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정보가 되었다.

중국 동시대 예술가들은 대중적으로 익숙한 현실 속 이미지를 회화 속에 융합하거나

언어와 그들에게 서양의 대중 스타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만큼

익숙한 도상부호, 예를 들면 문혁시기 선전화, 지도자상, 문혁시기의 모범연극,

영화나 텔레비전 화면 등을 재조합하였다.

당시 영화나 텔레비전 등 대중매체와 오락 도구의 보급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상당히 변화시켜

새로운 대중 취향을 형성하였다.

가장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문화 현상은 20세기 말 소위 ‘시각 영상을 중시하는 시대’의 도래를 들 수 있다.

제일 먼저 등장한 차이쯔충(蔡志忠)의 ‘경전만화’는 생동감 넘치는 필촉으로

고전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이외 미술사 속 고전적인 예술작품, 유명 작가의 작품, 중국의 전통 민간예술 등이 있다.

이렇게 잘 알려진 이미지와 민족 문화, 집단 기억으로 작가들이 그것을 다른 공간과 장소에 차용할 때

시공간이 바뀐 자리에서 충돌과 확산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의미를 가진 낯선 언어가 된다.

시장경제의 활성화는 중국 현대미술에 활력을 가져다주었고,

창작과 전시, 판매, 출판 등 각종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인상파 이후 야수, 입체, 표현, 추상, 다다, 초현실, 팝아트 등

서구 모더니즘자료들이 유입되면서 작가들은 자유로운 표현의지와 개인적인 개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85 신조운동’과 함께 설립된 여러 미술 단체와 1987년 중국미술관에서 개최된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의 전시,

1989년 ‘중국현대예술전’, 1992년 ‘광주비엔날레(廣州雙年展)’ 의 진행으로

각종예술사조와 여러 유파가 발생하였으며 많은 작가들이 배출되었다.

이러한 정치, 사회, 예술적 변혁은 마오쩌둥 개인과 그 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1980년대 후반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난 지 10주년 되는 시기 중국에서는 대대적으로

마오쩌둥 열풍, 즉 ‘마오열’이 일어났다.

1990년대 이후 중국현대미술이 대표적 경향인 ‘정치적 팝아트’의 주인공이 된 마오쩌둥 도상은

이 기간에 크게 유행하였다.

정부에서는 적당히 마오쩌둥을 찬양하였고 민간에서는 마오쩌둥을 숭배하고 신화화하는 것이

압도적이었는데 예술계에서는 대다수중성적으로 우파에 편향되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1990년대 확산된 마오쩌둥 열풍은 10여년전 ‘마오쩌둥’에 대한 일종의 소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정치적 현상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마오쩌둥의 역사적 지위를 긍정하며 사람들은 마오쩌둥에 대한 회상을 이끌어냈다.

이후 마오쩌둥과 관련한 기록 작품이 대량 출판되었다.

1989년부터 1992년 5월까지 시장에 나와 판매하는 마오쩌둥 관련 서적과 잡지는 100여종이 되지 않았고

누적 판매량은 140,000,000권이었다. 이는 3년 동안 중국 내 도서 판매량의 23.5%를 차지하였다.

1990년대의 마오쩌둥열은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 마오쩌둥을 비방하는

공개적인 정치적 규탄에 대한 심리적인 부정 행위였다.

마오쩌둥 관련 출판물 외에 마오쩌둥의 표준 초상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1989년 37만여장에서 1991년 500여만장이 인쇄되었고, 1992년까지 3년 동안 1100여만장이 인쇄되었다.

이외에 관련 음반과 영화도 제작되었다. 홍콩과 타이완에서도 마오쩌둥 열풍이 일어났고

일본, 미국, 영국 등지에서는 마오쩌둥을 연구하는 기구가 설립되어 논문과 서적을 출판하였다.

이러한 열풍의 배경에는 1980년대 말 마오쩌둥에 대해 냉혹한 시대에 성장하였던

젊은 학자들은 서양의 시장경제체제 안에서 대량의 서구 가치관과 사회 사조를 흡수하였으며

소위 자유와 민주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격렬한 충돌을 겪은 후 좌절과 실패, 가책을 느꼈다.

1990년대 마오쩌둥열은 정치적 측면이 문화적 영역으로 확산된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중국현대 미술은 중국 역사와 필연적 관계를 가지며,

거대한 관점의 시각을 배제하고 일상적 사물로 시선을 집중하였으며 자신의 개인적 정서와

일상생활 및 도시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통해 또 다른 언어를 탄생하게 하였다.

이때 대중소비문화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였으며 문화의 새로운 방향을 열었다.

즉각적으로 외부에서 온 소식을 접하고 직관적인 형상 복제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각 개체 사이의 통합을 추구하였으며

대중의관심과 현실에 대한 체험과 인식에 주목하였다.

여기서 마오쩌둥 이미지는 이미 과거의 지나간 역사가 되어 작품 속에서

직접적으로 대중소비문화의 표층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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